왜 ‘영웅’인가?

subway

나는 도시에 저항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 이는 사진에서 드러난 다기 보다는 사진 찍는 행위에서 드러난다. 내가 도시의 표면에 관심이 없듯이 나는 사진에 표면에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도시가 틀리는 순간, 도시를 운용하는 특정한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순간은 투쟁의 현장이나 자연 재해, 대형 참사와 같은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미시적인 순간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일정한 경로, 특정한 영역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집에서 작업실, 작업실에서 집을 왕복하는 제한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미시적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도시도 연기를 한다. 도시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이유들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고, 또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속이는데, 이러한 극의 배후에는 아마 우리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배우가 화장을 걷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그의 인간적인 풍모가 드러나는 것처럼 내가 주목하는 것은 도시가 화장을 걷어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때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 이라는배우는 화장을 걷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술을 바꿔가며 새로운 극을 전개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한 배우 서울의 진면모를 볼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살고 도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볼 밖에 없다. 이는 시선의 문제이고 인식의 문제이다. 도시속을 살아가는 나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도시를 살아가는 내 시선과 인식은 변화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사진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발견되는데, 이를 위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영역, 내가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결해 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사건을 평면으로 교환하여 그것을 사진이라고 호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이는 곳과 보려고 하는 것 사이를 횡단하며 이를 통해 내 비판적인 인식을 날카롭게 하는 데에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도시에 저항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도시의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내가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인식적으로 느끼는 문제지점이 이들에게서는 현실로, 그리고 생생한 삶의 모습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모습은 내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 두려움과 연관된다. 이 두려움은 단순히 직업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 또는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진 사람의 모습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습 들이 재현하고 있는 도시의 이면과 연관된다. 제도의 모순과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고공 크레인에 오르고 분신자살을 결행하는 투쟁가의 모습처럼 이들은 내게 단순히 거지, 난봉꾼, 취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이데올로기, 도시가 연기하는 가짜 연극을 고발하고 이를 폭로하기 위해 극장에 뛰어든 일상속의 투쟁가로 다가온다.

도시 속에서 나는 마치 사냥꾼의 시각으로 도시를 발견한다. 이때 카메라는 나의 무기이자 나의 도구가 된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는 필름을 사용하는 자동카메라인데 여기서 이것은 가장 원시적이고 그리고 단순한 형태의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사냥꾼이 사냥감의 시야를 피해 은닉하고 잠복하듯이 나는 카메라를 숨기고 잠복한다. 대상이 정확한 시간, 정확한 공간에 들어올 때 나는 카메라를 꺼내고 일순간에 대상을 포착한다. 이는 가장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가장 결정적인 사냥감을 포획하는 사냥꾼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작업과 관련하여 나는 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건, 필름 카메라로 찍건 큰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필름, 그 중에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들을 사용하는 것은 이 필름이 선사하는 특유의 우연적인 화학작용에 있다. 촬영 결과가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은 사건의 발생(셔터를 누름)과 그 결과를 확인(현상) 하는데 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두 개의 시간의 간극에서 나는 실시간의 디지털 조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과 성능이 그닥 좋다고 할 수 없는 자동카메라는, 내가 지시하는 사건과 대상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하는 것은 일종의 우연적인 현상을 기대하는 나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 의도된 대로, 기능에 따라, 목적에 맞게 구획되고, 기획된 도시공간 속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과 자동카메라의 기능적인 한계가 맞물려 빚어내는 우연에서, 나는 사진이라는 상투적인 대상 object 이 아닌 잠재성과 우연으로 점철된 새로운 차원의 공간과 시간과 마주한다.

2011년 12월 유병서